프로 N잡러의 조카 돌봄 출장 + 교육용 보드게임 아이와 함께 하기

2021. 4. 30. 23:02칼퇴의품격 일상/일상과 생각

4차 산업 혁명 시대가 오고 있다. 언제부터 시작될 지 모르지만(어쩌면 시작된건지도) 로봇과 A.I로 대변되는 새로운 날이 진행 중이다. 여러분은 그날을 대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개인적으로는 이미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어서, 더욱 프로페셔널한 N잡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미 몇 개의 일을 동시에 하고 있고, 이날은 1개가 또 추가되었다. 조카 돌봄이라는 다소 극한의 Job이다.

우리 누나의 초딩 아들을 케어하는 고도의 집중력과 정신력을 요하는 일. 지금까지 나 혼자 온전히 담당한 적은 없어 걱정이 앞섰다. 누나 집으로 가서 내가 해야할 일은,

  1. 아이 하굣길 마중 나가기
  2. 놀이터에서 조카 노는거 봐주기
  3. 집에서 조카와 교육용 보드게임 하기

크게 세 가지 일이었다.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특히 1번 하굣길 마중은 아이와 엇갈릴까봐, 혹은 내가 약속 시간에 늦을까봐 바짝 긴장하며 수업 끝나기 30분 전부터 초등학교 정문에서 대기를 탔다.

하굣길 마중

▲ 플래카드의 문장이 왠지 서글프고 짠하다. '저 이제 학교 다녀요!' 라니... 코로나를 만든 어른으로써 반성모드 On.
▲ 살면서 처음 해보는 아이 하굣길 마중. 부모들의 정보 교환의 장이기도 하다.

조카를 못 만날까 하는 걱정과는 달리, 애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 '삼촌~~~'하며 달려 나왔다. 마스크 쓰고 있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 나를 어케 찾았지? 신기하면서 내심 뿌듯했다.

집에 가는 길을 다 외웠다는 듯 나보다 한 발자국 앞장서며 걷는 조카. 그러다 한번씩 뒤돌아 내게 손을 잡아 달라고 하는게, 다 큰 거 같으면서도 여전히 애기 같은 모습이었다. '내 애가 안 컸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놀이터 지킴이

처음 조카를 봐달라고 했을 때는 집에만 있으면 되는 줄 알고 쉽게 생각했다. 그러나 9살 짜리 아이도 다 자기만의 스케줄이 있는 법. 조카는 하교 후 절친 J군과 놀이터에서 놀기로 미팅이 잡혀 있었다.

주섬주섬 뭔가를 에코백에 넣더니 나한테 들어달라고 했다. 뭐가 들었나 봤더니 딱지와 마실 물이었다. 딱지하면 신문지로 빳빳하게 접는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딱지는 그렇지 않더라. 플라스틱 제품으로 공장에서 찍어져 나온다. (-_-)

▲ 뭐가 그리 즐거울까? 도무지 웃음 포인트를 알 수 없는 아이들

놀이터에 나오니 OECD 출산율 꼴찌 국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애들이 많았다. 삼삼오오, 아니 삼삼사사(5인 제한ㅠㅠ) 모여 딱지 치기를 하는 아이들, 킥보드를 타고 바삐 돌아다니는 아이들, 그네 서로 밀어주는 애들. 꺄르르 꺄르르 하며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니 조카 돌봄이로써 나도 기분이 좋았다.

성경에 보면 어린 아이는 그 모습이 천사와 같다고 하던데, 실제로 아이들과 놀아보니 순수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와 일면식도 없던 애들이 몇 번 놀아주니 내게 안기고 장난 치고 등에 업히고... 난리도 아니었다.

2시간 넘게 뛰어 다니며 놀다가 내 체력이 지칠 때쯤, 다행히 조카의 절친인 J군의 어머니가 놀이터에 오셨다. 이제 집에 가야 한다며 J군을 데려간 덕분에 나도 2시간 만에 놀이터 탈출에 성공했다.

 


 

조카와 교육용 보드게임 하기

돌봄이 미션이 떨어졌을 때 미리 준비해서 간 게 있다. 에듀스낵이라는 바둑알을 활용한 교육용 보드게임이다. 조카랑 이거 해보려고 주말에 미리 카페가서 연습하기도 했었다.

아이와 보드게임을 하는 목적에는 문제해결력과 분석력을 키워주기 위함이 있다. 게임의 룰을 직접 알려주기 보다는 조카가 스스로 영상을 보며 규칙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봤다.

에듀스낵은 약간은 난이도가 있는 게임이라 규칙을 한 번에 이해하기는 어려운 편이다. 그래도 조카가 흥미를 느꼈는지 영상을 여러 번 돌려보며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고마웡... 삼촌이랑 놀아줘서ㅠㅠ)

▲ 교육용 보드게임이라 관심 없을 줄 알았는데 집중력이 꽤 좋다. 내 조카여서 천재인 듯

바둑알을 게임판 위에 요리조리 놓아가며 플레이 하다가 막히는 순간이 왔다. 어른들 같으면 세부 규칙이 어떻게 되는지 메뉴얼을 볼 텐데, 아이들은 확실히 창의력이 좋다는 걸 느꼈다. '이건 그냥 이렇게 하자~'며 없는 규칙을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우리 조카.

▲ 보드게임은 얼굴 보며 같이 할 수 있는 게 확실히 장점이다.

1시간 정도 하니 슬슬 아이 집중력이 떨어졌다. (사실 내 체력이 먼저 떨어짐 -_-) 조카랑 반나절 동안 알차게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집에서 보드게임하고, 밖에서 활동적으로 놀기도 하고. 특히 같이 손잡고 학교에서 돌아올 때 느꼈던 뭉클뭉클한 감정은 꽤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있을 것 같다. 말도 못하던 애가 벌써 이렇게 커서 초딩이 되다니... 여러가지로 느끼는 게 많았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