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갔던 구례 여행, 맛집만 모아봄 [예원 / 구례밀밭 / 들녘밥상 / 땅고랑오리집 / 봉성피자 / 청솔가든]

2020. 6. 5. 07:00한국여행 방가/국내 맛집&카페

구례는 1년에 한 번은 꼭 가는 곳이어서 올해도 어김없이 다녀왔다. 코로나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여전히 해야 하지만 서울/경기권에서 멀어지면 질수록 거리두기는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된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의 하루 접촉자 수보다 2박 3일 구례에서 접촉하는 사람 수가 훨씬 적을 정도니...

엊그제 다녀와도 또 가고 싶은 구례는 코로나 시즌에 자연과 먹방으로 면역력 키우기에 최고의 지역이다. 이번 글은 2박 3일 구례 여행 동안 먹은 맛집 모음으로, 구례 여행 계획이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점심 걱정하는 직장인도 이거 보면 메뉴 선정하는데 고민이 좀 줄어들 듯.(열심히 일하고 밥은 맛있는 거 먹어야제~~~!)

예원 (여행의 시작_해물파전)

@구례, 예원

예원은 이제 구례 여행의 시작이 되었다. 구례로 통하는 화엄사IC를 빠져나오자마자 예원에 가서 뭘 먹을까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이 식당은 화엄사 앞의 수많은 식당 중 하나일 뿐인데, 한번 식사한 후로 마음에 들어 계속 가게 되었다.

예원에서 늘 빠지지 않고 먹는 건 만 원짜리 해물파전이다. 이거 한입 먹고 눈 앞에 있는 지리산 바라보면 세상 더 필요한 게 없을 정도가 된다. 글이 50대 아재 감성으로 가는 것 같다만, 이상하게 예원을 떠올리면 이렇게 된다. 머릿속에 파전, 동동주, 맑은 공기 한 스푼 들어가면 바로 20년 전 느낌 OPEN이다.

구례밀밭 (미친 고소함_들깨수제비)

@구례, 구례밀밭

이 식당은 사실 처음 갈 때 긴가민가했다. 리뷰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불안 불안한 느낌. 그래도 우리밀을 쓴다니 이거 하나 때문이라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밀은 한번 먹어보면 계속 찾게 되는 이유가, 먹고 나면 수입밀을 먹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뱃속이 편안하다. 뭐, 소화기능에 문제가 없는 20대는 어느 걸 먹어도 크게 다른 게 없겠지만.('생각해보면 돌도 씹어먹는 나이'라는 이 낡은 표현이 괜한 말이 아니다)

어쨌든, 수도권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우리밀 쓰는 식당을 구례에서는 자주 볼 수 있다. 구례밀밭도 그중 하나라서 먹고 나면 확실히 속이 편하다. 내가 주문한 건 안전한(?) 팥칼국수와 도박을 걸어 본 들깨수제비였는데, 예상치 못하게 이 들깨수제비의 맛이 정말 환상이었다.(팥칼국수도 굿이었음)

들녘밥상 (면역력 급상승_뽕잎백반)

@구례, 들녘밥상

입은 여전히 잡식의 미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머리는 비건(VEGAN)이 자리 잡은 지 꽤 되었다. 그러다 보니 평소 같으면 안 갔을 곳인데 일부러 찾아서 간 식당이 들녘밥상이다. 완전히 100% 비건식당은 아니고 저녁엔 고기 장사도 하는 일반적인 식당이다. 나는 이 중 뽕잎백반을 먹어보고 싶어 찾아갔다.

원래 한국의 오랜 전통 음식, 특히 사찰음식으로 대표되는 우리 밥상은 완전한 비건식이다. 기존의 것을 고수만 잘해도 우리는 건강한 자연식 밥상을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식당의 뽕잎백반은 뽕잎밥에 된장 시래깃국, 뽕잎전과 10가지가 넘는 나물반찬이 나오고 고기는 하나도 없는 완전 비건식이다.

내가 채소를 먹기 시작한 지 오래된 게 아니어서 나물의 맛을 자세하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건강하고 슴슴한 맛이 난다. 자극적인 맛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사실 20대에게 들녘밥상을 추천하기는 어렵고, 건강에 관심 없는 30대에게도 가보라고 말하기 어렵다. 나 같이 비건이나 건강에 관심이 높은 사람에게 완전 강추하고 개인적으로도 재방문의사 200% 일 정도로 만족한 식사였다.

땅고랑오리집 (진짜 로컬식당_현지감성)

@구례, 땅고랑오리집

비건(VEGAN)과 자연식 이야기하다 오리집 이야기로 넘어와서 개인적으로 당황스럽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머리만 비건이고 입은 아직 잡식이다. 그리고 전라도에 와서 이런 오래된 로컬 맛집을 안 간다는 것은, 아직은 여행자로서 선택하기 쉽지 않은 결정이다.

땅고랑오리집을 알게 된 건 루씨살롱이란 카페를 통해서다. 카페 주인은 타지에서 직장 생활하다 구례에 정착한 분으로, 이 분이 SNS에 땅고랑오리집을 추천해서 알게 되었다.

현지에 계신 분이 추천한 식당답게 관광 분위기 1도 없고 손님들 전부 구례 사람만 있었다. 내가 핸드폰 카메라로 음식을 찍으니 주인분이 대번 어디서 왔냐고 물어볼 정도였으니까. 여행 좋아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런 질문 나오면 원하는 식당 잘 찾아온 거 맞다.

요즘은 갈수록 식당 쏠림 현상이 심해서 땅고랑오리집 같은 식당을 찾기가 굉장히 힘들다. 노포인데 관광객은 거의 없고 현지인만 가는 곳 말이다. 이런 식당은 일단 인스타에 없고(없어야 하고), 리뷰가 적지도 많지도 않아야 하며(아예 없으면 내가 알 수가 없으니) 실제로 갔을 때 맛도 있어야 한다.

적다 보니 정말 서울대 합격 수준의 까다로운 조건이 아닐 수가 없는데(-_-::) 아무튼 땅고랑오리집은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식당이다. 냉동오리고기를 사용하는 건 약간의 단점이지만 그만큼 가격이 저렴해서 수긍할만하고, 부추와 함께 쌈 해서 먹으면 비리지 않고 맛이 좋다.

그리고 이 집의 킬링 포인트는 음식 그 자체보다는 지역 손님들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분위기와 정서다. 이런 건 아무리 음식 잘하는 유명한 셰프가 와도, 돈을 억만금 준다고 해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것들이다. 오직 현지에서만 느껴지는 지역 냄새는 아무리 코로나가 무서워도 여행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봉성피자 (진정한 피자 장인_두께보소)

@구례, 봉성피자

우리나라에서는 도우가 얇은 씬피자보다는 두꺼운 피자가 인기가 많고 나 역시 두꺼운 걸 좋아한다. 그런 피자로는 도미노피자, 미스터피자 같은 프랜차이즈 몇 개가 떠오르는데, 이제 그 자리를 봉성피자가 대신해야 될 것 같다.

원래는 구례까지 와서 피자를 먹을 계획은 없었지만 숙소 테라스의 바람이 너무 좋아 급 피맥을 먹기로 결정했다. 여행 계획을 70% 정도만 세워놓는 편이라 가끔 30%의 이런 공백이 여행의 기분을 더해준다.

봉성피자 매장은 작지만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인테리어가 귀엽고, 피자 장인으로 보이는 사장님 자체가 가게의 마스코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코로나 걱정만 아니라면 매장에서 먹고 가고 싶었을 정도로, 그러지 못한 게 내심 아쉬웠다.

주문할 때 이것저것 옵션을 추가해서 그런가, 피자 한 조각 들었을 뿐인데 거대한 지리산을 든 기분이 들었다. 너무 커서 한입 먹고 숨이 턱턱 막혀오는, 그런데 맛은 또 기가 막힌 이 상황은 뭐람. 이런 느낌은 난생처음이라 당황이 되면서도 구례의 날씨가 너무 좋아 결국은 맥주와 함께 완판 하고야 말았다.

청솔가든 (발라져 나오는 참게살_가성비갑 참게수제비)

@곡성, 청솔가든

구례 여행을 마치고 경기도 방향으로 가는 길, 곡성에 있는 청솔가든을 발견했다. 허영만의 식객에 나와서 유명하다고 하는데, 사실 난 그런 건 믿지 않고 메뉴가 괜찮고 식당이 괜찮으면 가는 편이다.

구례, 곡성, 하동. 이쪽 지역을 여행하면 섬진강변을 따라 참게 식당을 종종 보게 된다. 그때마다 너무 비싼 가격에 먹을 게 없다는 걸 알아서 눈길이 가지 않았다. 그런 참게를 나름 가성비 있는 가격에 맛볼 수 있는 메뉴가 참게수제비인걸 알았다. 아마도 나 같은 사람을 타겟으로 해서 만들어진 메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성비를 완전히 버릴 수 없는 사람을 위해 준비된 음식이 아닌가 싶다.

참게수제비는 좋은 게 참게가 완전히 발라져 나와서 먹기가 편하다. 살 바르고 요리하는 시간이 필요해서 미리 예약 전화를 해야 먹을 수 있다. 참게살과 수제비의 만남은 예상되는 맛이긴 한데 조합 자체가 처음이라 나름 새롭게 느껴지는 게 있었다. 구례/하동에서 유명한 다슬기 수제비를 못 먹고 그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지만 사람이 적어서 조용히 섬진강을 보며 식사할 수 있었던 게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