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봄을 만끽하는 구례 트레킹 코스 : 화엄사 치유의 숲길, 지리산둘레길, 섬진강대숲길, 상생의길

2022. 4. 11. 11:01한국여행 방가/국내 여행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못하게 된 이후로 겨울만 되면 슬럼프에 빠져왔다. 원래부터 추위를 잘 못 참는 성격이라 겨울이면 따뜻한 동남아로 꼭 여행을 떠났었다. 그걸 못하게 되니 한국에서 3월까지 버티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2022년 겨울도 어김없이 해외여행 못감에 대한 현타가 왔고 약간의 우울함이 찾아왔다. 우울함 극복을 위해 미니멀리스트가 한다는 '비움'을 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75리터(=가장 큰 사이즈) 하나씩을 채우며 집 안의 물건을 비웠다.

▲이렇게 큰 쓰레기봉투를 벌써 4개째 썼다. 그래도 집에 비울 게 여전히 많다는 게 함정.

그렇게 물건을 비우며 존버하니 봄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가벼워진 집을 보니 마음 또한 가벼워졌고, 오랜만에 구례로 국내여행을 떠났다. 이곳저곳 많이 다녀봤지만 한국의 봄을 느끼기에 구례만한 곳이 없다.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화엄사IC에서 빠지면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지리산 품 안에 자리잡은 구례가 나온다. 지난 번 구례 여행에서는 비가 와서 운치있는 모습이었는데, 이번에는 화창하고 완연한 봄 날씨였다.

4월 둘째주라 벚꽃 절정은 살짝 지났지만 벚꽃 비를 맞기에는 또 이만한 때가 없다. 고속도로에서 나와 국도를 달리며 창문을 살짝 내리니 벚꽃잎이 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와 너무 아름답다'라는 이상과 '차 더러워지겠다...'라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다보니 어느덧 화엄사에 도착했다.

▲언제나 한결같은 구례

화엄사 치유의 숲길

화엄사 입구에는 맛집이 참 많아서 구례 여행 때마다 주로 먹으러 왔었다. 이번에는 맛집을 잠시 넣어두고 화엄사 안쪽에 있는 치유의 숲길로 갔다. 화엄사에서 연기암까지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이다.

여행지에 도착하자마자 걷는 것은 내 인생 최초였다. 겨우내 물건을 비우면서 정신을 맑게 했으니 구례에서는 많이 걸으면서 육체의 군살을 덜어내자라는 큰 그림을 그렸다.

화엄사에서 연기암까지 걷는 숲길은 적절한 햇살과 나무의 피톤치드향이 어우러지며 말 그대로 치유가 되는 느낌이었다. 왕복 4km로 장거리 운전 후 바로 걷기에는 쉽지만은 않은, 꽤 긴 거리였다. 다행히 사전정보 없이 무작정 걸었기에 연기암까지 다녀올 수 있었다.

▲사람은 없고 피톤치즈는 장난 아니긔

지리산둘레길

첫날 화엄사 치유의 숲길을 걸은 게 은근 10,000보가 넘어서 둘째날이 되니 다리가 뚜드려 맞은 것 처럼 아팠다. (-_-) 그래서 둘째날은 좀 더 쉬운 코스인 지리산둘레길 중 구례의 오미-난동 구간을 걸었다.

이 코스는 벚꽃길을 감상할 수 있고 사람이 없는 게 장점이다. 난이도는 최하하, 아름다움은 최상상이다. 내가 추천하는 코스는 '구례 꽃강'에서 '구례 귀농귀촌지원센터' 사이다.

꽃강은 가을에 코스모스가 활짝 피는 지역이고, 사람들이 주로 이곳에 주차하고 사진을 많이 찍는다. 나는 사람들 많은 게 싫어서 반대편에 있는 귀농귀촌지원센터에 주차하고 꽃강 방향으로 걸었다.

▲2022년도 마지막 벚꽃을 즐겼다

섬진강대숲길

섬진강대숲길은 밤에도 조명이 있어 걸을 수 있는 곳이다. 낮에 지리산둘레길을 좀 가볍게 걸었기에 저녁에 좀 더 걷고 싶어서 찾아갔다.

대나무 사이에 조명을 해놨다고 해서 찾아가면서도 사실 큰 기대감은 없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면 기대감 최하하, 황홀함 극상상인 곳으로 내가 지금까지 가본 여행지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대나무 사이사이에 흐르는 은은한 조명과 운치있는 분위기의 음악은 구례스럽다라는 표현 외에 달리 말할 길이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의문이었고, 동시에 더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희망(?)을 하게 된 곳이다.

▲해외 수많은 여행지를 가봤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곳은 처음...

천은사 상생의 길

천은사는 노고단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사찰로, 순수하게 노고단으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입장료를 걷어서 오랫동안 말이 많았던 곳이다. (-_-) 그러나 이제는 여러 관계 기관의 노력으로 입장료가 폐지되었고 노고단 뿐만 아니라 천은사도 무료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이 있어서 그런가. 천은사 주변을 걷는 길 이름이 '상생의 길'이다. 무장애시설로 걷기 좀 불편하신 분도 비교적 쉽게 코스를 즐길 수 있다.

천은사에 대한 이미지가 개인적으로 좋지 않아서 이곳을 갈까 말까 망설였지만 결과적으로 가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이번 구례 트레킹 여행에서 낮에 가본 길로는 천은사 상생의 길이 가장 아름다웠다. 호수와 함께 보이는 지리산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곳, 가을에 꼭 한번 다시 오고 싶은 길이다.

▲좋은 곳에 오니 부모님과 함께 오고싶다(=나이 들었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