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산' 서평 | 관심없는 주제도 재밌게 만드는 스토리의 힘 | 아무튼 시리즈(9)

2020. 9. 14. 07:00도서 리뷰

30여 권의 아무튼 시리즈 중 9번째로 읽은 책은 '아무튼, 산'이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작가가 모두 다르고, 주제 역시 겹치는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통적인 맥락이 하나 있다. 무언가에 미쳐본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8권째 읽어보니 그것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적당히 무언가를 좋아하는 부류(아마추어리즘), 나머지 하나는 광적으로 빠져서 그것이 일(Job)이 되는 경우다. 둘 중 어느 쪽이 낫다, 이런 것은 없고... 전자는 인생을 즐기는 것 같아 대리만족이 되고, 후자는 깊이와 열정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예를 들면 '아무튼, 외국어'는 불어, 중국어, 스페인어, 일본, 중국어를 3개월씩만 배운 작가의 이야기이다. 3달씩 언어를 공부하는 게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쉽게 가지는 취미도 아니다. 책을 읽고 있으면 나도 이 작가처럼 외국어 좀 배워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취미로써의 외국어 공부를 재밌게 글로 표현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3개월이 아니라 3일 만에 포기할 것을)

아무튼, 산

반면 '아무튼, 산'은 취미가 직업이 된 케이스이다. 규모 있는 출판사에서 일하던 작가가 취미로 산을 타게 되고, 얼마 안 있어 히말라야까지 다녀온다. 그 후 그것이 발판이 돼서 산(Mountain) 전문잡지에 들어가 오랜 기간 동안 일을 함으로써 취미와 직업을 일치시키는 행운을 얻었다. (지금은 산에 관한 책까지 썼으니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 책은 등산에 관심이 없는 나도 빠르게 완독 했을 정도로 재밌다. 장황하게 이 산, 저 산을 소개한 것이 아니라 산과 얽힌 자기 인생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산 좋아한다고 아무나 작가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무튼 시리즈 중에는 소재는 재밌지만 글이 매끄럽지 않은 경우도 있다. 글쓴이가 전업작가가 아닌 경우에 보통 그렇다. 이번 책은 그렇지 않다. 문장과 이야기 모두 군더더기 없고 재밌다. 작가 본인이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오랜 기간 근무를 한 경험이 있고, 소설 전공으로 대학원을 마친 내공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책을 통해 '산을 탄다는 것'에 여러 종류가 있음을 알게 됐다. 여행과 비교하면 좀 쉬울 것 같다. 평생 패키지 여행만 해 본 사람은 그것이 여행의 전부인 줄 알 것이다. 그러나 자유여행을 해보면 그 세계가 끝없이 확장을 해서, 2주 여행, 한 달 살기, 1년 동안 세계 일주하기 등 무한대로 여행의 컨셉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산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 산은 입구까지 가서 주변 경치를 본 후 파전과 막걸리를 먹고 오는 것이다. 가끔은 정상까지 다녀온 후 세상 대단한 일 했다는 듯이 뿌듯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튼, 산'을 보니 이 세계 역시 너무나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루 동안 산 정상 찍고 오는 것을 패키지여행에 비유한다면, 1박 이상을 하는 것은 자유여행에 해당한다. 각종 장비와 사전 조사, 체력적인 준비 등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1주일을 산에서 지낸다고 하면 또 다른 것들이 필요할 것이고, 히말라야로 가서 한 달을 지낸다면 웬만한 사람은 이해 못 할 저 세상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알게 되니 이제는 산에 가는 사람에게 '어차피 내려올 거 왜 올라가?'라는 말을 못 할 것 같다. 사람은 역시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동물이 아니겠는가. 그나마 책을 통해 산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

주말에는 집에서 가까운 산에 가보려 한다. 비록 책 속의 낭만적인 산과는 거리가 있을지라도, 앞뒤로 손뼉 치며 올라가는 50-60대가 대부분일지라도, 이제는 오해하며 멀리했던 산과 친해질 시간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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