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역사여행: 천년 역사를 가진 홍주에서의 하루

2018. 6. 30. 23:45한국여행 방가/국내 여행

홍성의 원래 이름은 홍주. 충청도의 4대 목 중 하나였다. 홍성여행을 하고나면 '홍주'라는 지명을 더 많이 보고 듣게 될 것인데, 그만큼 홍성보다는 홍주가 역사적으로 이 지역과는 더 친밀한 이름이다. 앞으로 내포신도시 인구 증가로 인해 군에서 시 승격 가능성이 있는데 이 때 홍성시가 아니라 홍주시로 승격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홍성이란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이라 올해 맞는 홍주 지명 1,000년은 더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군에서도 여러가지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고. 이럴 때 좋은 의미를 되새겨서 홍성여행을 한다면 더 기억에 오래 남는 여행이 될 것 같다.

홍성(홍주)이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지역답게 이곳 출신의 위인들이 많다. 홍성만 한바퀴 돌아도 정말 많은 역사 공부를 하게 될 것이다. 원래 나는 한국사에는 별 관심이 없던 사람인데 나이가 들수록 이제는 문화재와 역사를 찾아 다니는것이 즐겁다^^;;

(홍성의 새 신도시, 내포신도시가 궁금하신 분은 아래 영상을 봐주세요~ ^^)

성삼문선생유허지

홍성 읍내를 돌아다니다가 성삼문이라는 이름을 곳곳에서 보게 되었다. 성삼문? 도대체 누구지. 처음엔 이름이 어려워서 잘 외워지지도 않았다-_- 궁금해서 그의 유허지를 직접 찾아가봤다. 유허지는 실제 유물이 남겨져 있는 것은 없고 역사적인 사실만 있는 곳으로, 성삼문선생유허지는 그가 태어난 집터이다.

성삼문은 조선시대에 세종대왕을 도와 한글을 만든 유명한 집현전 학자이다. 세종대왕의 손자 단종이 왕이 된 후, 단종의 숙부(삼촌)인 수양대군이 왕위 찬탈을 하려고 할 때 그걸 막으려고 했던 인물이다. 이 사건을 계유정난이라고 하는데 영화 관상을 보면 이 사건에 대해 잘 알 수 있다.(영화에 성삼문이 나오지는 않는다)

수양대군을 막고 단종을 계속 모시려다 죽음을 당한 6명의 충성스런 신하를 사육신이라 부른다. 성삼문은 사육신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인물. 이 곳 유허지에는 사육신의 위패를 묻은 '노은단'이라 부르는 가묘가 있고, 성삼문의 영정을 모신 충문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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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삼문선생 유허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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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문 인증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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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문사, 노은단으로 올라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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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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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삼문의 영정을 모신 충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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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문사 옆으로 노은단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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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신 성삼문의 단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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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은단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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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육신의 위패가 묻혀있는 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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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삼문선생유허비

최영장군 사당

최영장군 사당은 성삼문선생유허지에서 차로 조금만 이동하면 갈 수 있다. 충청도, 전라도, 경사도 지역 등에 최영의 사당이 있고, 충청도에서는 홍성에 이 분의 사당이 있다. 닭재산이라는 조그마한 산의 중턱에 사당이 있어서 올라가는데는 꽤 힘이 든다.

최영장군은 고려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문신이다.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하는 인물 중 한명인 최영장군! 초딩때는 문신보다 무신이 왠지 멋져보여서 이런 사람들을 동경하기도 했다. 특히 최영은 나가는 전투마다 죄다 승리를 하니 고려시대의 수퍼히어로라고 부를만하다.

황금보기를 돌 같이 하라.

최영장군의 아버지가 아들 최영에게 한 유언으로, 최영장군은 이 말을 인생의 지침으로 삼고 살았다. 실제로도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큰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인물! 진정한 참 군인이라 할 수 있겠다 ^^; 나중에 고려 이성계의 쿠데타로 인해 최영은 제거되지만 그 훗날에도 명장으로 신격화되어 사람들이 숭배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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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장군 사당 올라가는길. 엄청난 체력을 요한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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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돌아보니 엄청난 경사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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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여기서 한걸음 더 들어가야 사당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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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장군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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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당에서 바라보는 전경. 좀 힘들긴 한데 올라오고 나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김좌진장군생가지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에서 태어난 김좌진장군, 그곳에 장군의 생가지가 있다. 홍성은 터가 좋은 것인지 역사적인 인물이 많이 태어난다^^; 아무튼 김좌진장군 같은 경우에는 홍성 읍내에 동상도 있고, 생가지도 가장 크게 잘 되어있다.

김좌진장군은 대한제국 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어렸을 적에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에서 태어났음에도 어려운 애국의 길을 선택하였는데 여러가지면에서 진심으로 존경할 만하다. 홍성에서는 대한협회지부, 기호흥학회 같은 조직을 만들어서 애국계몽운동을 하였다.

이후에는 만주로 넘어가 그 유명한 청산리대첩으로 일본군에 큰 승리를 거두었다. 가장 안타까운건 40살 정도되는 너무나 이른 나이에 공산주의자에게 피살되어 돌아가신 점이다. 피살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를 위해 더 큰 일을 많이 하셨을 분인데. 이미 오래전에 역사가 되신 분이지만 이런 분들이 허망하게 돌아가신걸 볼 때면 가끔씩 화가 치밀어 오른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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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좌진 장군 생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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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남도 기념물 제76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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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왠지 관우가 타고 다녔을법한 커다란 말 모형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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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늠름한 모습의 김좌진 장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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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만든 위인 중 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