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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행 방가/국내 여행

오명항 선생 토적 송공비 구경하기 | 문화재 여행, 안성 문화재

by 칼퇴의품격 2017. 10. 11.

오명항 선생 토적 송공비에 대해

조선 후기의 문신인 오명항 선생(1673~1728)이 영조 4년(1728)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을 토벌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서 안성의 군관민이 세운 송공비이다. 오명항은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의 손자로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슬하에서 공부하였다. 과거에 합격한 후에는 부수찬, 이조좌랑, 평안도관찰사 등을 거쳤다.

붕당정치로 소론이 실각하자 관직을 그만두었다가 소론이 다시 집권할 때 벼슬길에 올라 이조판서와 병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경기, 충청, 전라, 경상 4도의 도순무사로 임명되어 난을 진압하였다. 그 공로로 분무공신 1등으로 해은부원군에 봉하여졌고 후에 우의정에 임명되었다.

비는 네모진 받침 위에 둥글게 처리된 직사각형 비몸을 올린 형태이다. 비문은 당시 종사관인 우의정 조현명이 짓고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가 글을 썼으며, 대제학 이광덕이 전액(비 몸돌 상단부에 새겨져있는 비석의 명칭)을 썼다. (*문화재 앞 팻말 설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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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있는 낙원역사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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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명항 선생 토적 송공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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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명항 선생 토적 송공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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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명항 선생 토적 송공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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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명항 선생 토적 송공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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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저물고 있는 공원

오명항 선생 토적 송공비 답사 후기

오명항 선생의 비안성시내의 낙원역사공원 안에 있다. 역사공원이라고 해서 뭐가 좀 있어보이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동네의 평범하고 작은 공원이다. 주위 아파트 주민들이 나와서 산책하거나 지나다니는 길목이다.

이곳에서 오명항 선생 송공비를 구경하며 사진을 찍으니 지나가는 한 직장인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기도 했다. 그리고는 '여기 있는게 뭐 대단한 물건인가보네.'라는 듯이 송공비를 다시 한번 뒤돌아 보았다. 문화재는 우리 주위에 있지만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면 그냥 돌덩어리가 되기도 한다.

송공비는 오래돼서 글자가 많이 지워지고 비석의 색이 바래 잇었다. 크기도 뭐 그렇게 큰 건 아니라 10분 정도 보니 구경이 끝났다. 오히려 그 근처에 있는 낡은 아파트가 더욱 관심이 가더라. 공원 자체는 잘 꾸며져 있어서 안성 피플들의 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재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