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 한달살기 #2 - 동네 주민들과 함께하는 슬기로운 시골생활

2023. 5. 4. 07:00한국여행 방가/영월 한달살기

어제는 한달살기 숙소에서 늦게까지 일을 하다 잠들었다. 새벽 3~4시에 잔 것 같다. 내 방은 암막 커튼이 안 되어 있어서 해가 뜨면 자동으로 일어나야 하는데, 너무 피곤해서 이불 속으로 꾸역꾸역 몸을 밀어 넣었다.

그러다 울린 한 통의 전화.

모르는 번호였지만 두 번째 울려서 어쩔 수 없이 받았다. 마을 사무장님이었다. 지금 숙소 밖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전 부치면서 먹고 있으니 나와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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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잔치 참여하기

밖으로 나가보니 미니 잔치 중이었다. 누군가가 산에서 두릅을 따와서 다 같이 먹는 거라고 했다. 마을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는 취사장에 모여. ^^;;;

일반적인 한달살기면 이렇게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할 일이 없겠지만 나는 현재 영월군에서 진행하는 귀촌 프로그램으로 한달살기 중이다. 그래서 사무장님이 특별히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시켜 주었다.

극I 타입이지만 성격도 나이에 영향을 받는 것인지 이런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살다보니 이런 일도 겪어보고, 재밌게 느껴졌다.

하지만 기본 30살 차이나는 분들과 하하호호 매끄러운 대화를 하기는 힘들었다. 내 장기인 청중 모드가 되어 마을 분들이 하는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입은 열심히 두릅전을 냠냠 했다.

마을 공용 취사장에서 아침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먹은 두릅전. 내 인생 두릅전이 되었다.

이장님 댁 놀러가기

내가 숲길을 좋아한다고 하니 이장님이 나를 차에 태워 집으로 데려갔다. 집에 있는 남편이 동네 숲길을 알려줄거라며. (내가 한달살기 하는 마을의 이장님은 여자 분이다.)

이장님 댁 입구에 강아지가 있어서 인사를 잠시 나눴다. 처음엔 날 보며 "멍!" 짓고, 꼬리를 세차게 돌려댔다. 경계의 꼬리 흔들기였다. 강형욱에게 배운 하품하며 천천히 다가가기를 시전하니 강아지도 이내 경계를 풀고 애교를 부렸다.

이장님 댁은 겉으론 화려하지 않았지만 내부가 멋있었다. 거의 아랍 부호의 집 같은 느낌이랄까. 안으로 길게 빠진 구조로 내가 상상하던 시골집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진을 찍었으면 좋았을텐데 사생활이라 패스...

동네 숲길이라 해서 우리 동네 언덕을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영월의 흔한 뒷산이란 해발 700미터가 조금 안된다.^^;;;; 그리고 여기는 등산로가 없는 생짜였다.

이장님 남편(=앞으로는 형님)이 숲길 입구만 알려주고 갈 줄 알았는데 산행을 같이 했다. 정상까지 가는 건 아니었고 산 중간 지점까지 같이 가기로 했다.

올해부터 산나물 공부를 하신다며 취나물을 뜯어 내게 주셨다. 가서 쌈 싸먹으면 맛있다고.ㅎㅎㅎ 일단 감사히 받고 형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재밌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셔서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물 이야기부터 형님의 개인사까지. 한 시간 넘게 산을 탔는데 이야기가 끊이지 않아서 정보 과부하게 걸리고 말았다.

집에 와서는 형님이 산에서 따주신 취나물을 먹었다. 나는 채소를 주로 생으로 먹는 편이라 이것도 생으로 먹어봤다. 산나물을 생으로 먹는 건 처음이라 먹으면서도 나물둥절하며 먹었다.

맛이 꽤 강했다. 역시 노지에서 태양을 제대로 받으면서 끌질기게 살아 남은 애들은 생명령이 강하다는 걸 느꼈다. 나는 생채소를 먹기 시작한 지 1년이 넘어서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었다.

산나물을 알고 눈으로 구분할 줄 알면 산행의 또 다른 재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까막눈이라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버라이어티한 영월 한달살기

하루에 생전 못해본 경험을 두 개나 했다. 마을 사람들과 두릅전을 먹고, 이장님 남편이랑 산도 타고. 영월 한달살기가 아니면 평생 못해볼 경험일 것 같다.

처음 마을 선택을 할 때 이 마을이 내 1, 2 순위는 아니었다.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랜덤하게 배정된 곳이었는데, 아직까지는 행운이 나를 잘 따라와주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