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충렬서원 답사하기 | 문화재 여행, 용인 문화재

2017. 11. 24. 07:00한국여행 방가/국내 여행

충렬서원에 대해

충렬서원은 동방성리학의 조종으로 추승된 포은 정몽주 선생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조선 선조 9년(1576) 이계·이지를 비롯한 지방유림의 공의로 정몽주와 조광조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처음에는 이 서원을 정몽주와 조광조의 묘소 중간 지역인 지금의 죽전동에 세웠으며 서원 이름도 죽전서원이었다.

임진왜란 때 서원 건물이 회진되어 선조 38년(1605)에 이정구가 경기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현감 정종선, 이시윤 등과 함께 논의하여 정몽주의 묘소 아래에 중건하였다. 3년여의 공사 끝에 사우 3칸, 동서재 각 2칸, 문루 3칸을 지었다. 문루 윗층은 강당이며, 아래는 문주방과 고사 등을 갖추었다. 이 때 조광조의 위패는 심곡서원으로 옮겨 배향하였다. 중창과 함께 충렬이라 사액되었으며, 정몽주 선생의 손자인 설곡 정보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죽창 이시직추가 배향하였다.

숙동 32년(1706)에 다시 후손 정제두·정찬조를 비롯한 여러 유림의 공의로 옛터 서쪽 가까운 곳에 이건하였다. 그 후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고종 8년(1871)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11년에 유림에서 사우를 중건하였고, 1956년에 강당을 복원하였으며, 1972년 전체를 보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6칸의 사우 내삼문, 외삼문,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된 8칸의 강당 등이 있다. 서원 입구에는 홍살문을 세워 신성시 하였다. 강당은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화합 및 강론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충렬서원은 일정한 중심 축이 없어 외삼문에 들어서면 강당과 사당이 동시에 보인다. 한때 용인의 대학자 도암 이재 선생이 여러 유림과 학문을 교류하던 곳이기도 하나, 그 이후 교육공간으로서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

1997년 유림의 결의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3학사의 한 분으로 추승되고 있는 추담 오달제 선생을 추가 배향하였다. 매년 3월과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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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렬서원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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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렬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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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렬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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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렬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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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렬서원

충렬서원 답사 후기

충렬서원은 용인시 소재 문화재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경기광주 오포쪽에 더 가깝다. 오포는 정몽주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원은 학덕이 있는 사람의 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충렬서원에는 정몽주, 오달제 등을 기리고 있다.

서원 바로 앞에는 넓은 공터같은 곳이 있어 주차를 편하게 하는것 까지는 좋았는데 문이 굳게 닫혀있어 안으로 들어가보지는 못했다. 주위만 서성거리며 사진 찍는것에 만족해야 했다. 문화재를 일반 사람들이 쉽게 좀 볼 수 있도록 하면 좋을텐데 문이 잠긴채로 아무 설명도 되어있지 않는 부분이 아쉽다.